독수리에게 물려 또 꾀를 내는데

끝까지

아니리
이러고 뛰고 노는디 어디서 윙 소리가 나더니 독수리란 놈이 토끼 대굴 박을 후닥딱 툭 탁 “아이고 장군님 어데 갔다 인제 오십니까” “오, 내가 시장해서 둥둥 떠 댕기다가 보니까 니가 보이더라 그래서 너를 잡아 먹을랴고 내려왔다” “아이구, 장군님 어디서부터 잡수실라” “뭐 말할 거 있느냐 그냥 어두진미라니 대갈박서부터 지근지근 씹어 먹어야 쓰겠다” “아이구 장군님 섧지 않으나 내 기맥힌 설움이나 한번 들어보시오”

중모리
아이고 아이고 어쩔거나 아이고 이를 어쩔거나, 수궁 천리 먼 먼길에 겨우겨우 얻어 온 것을 무주공산에 던져두고 임자 없이 죽게 되니 이 아니 원통하오

아니리
야 이놈 토끼야 예 너 무슨 딱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예 그런 것이요 요번에 제가 수궁에 들어갔지라 뭐시 어째? 니가 수궁에 들어갔어야 예 수궁을 들어갔더니 수궁 용왕께서 ‘의사줌치’를 하나 내어 주십디다” “’의사줌치’라는 것이 무엇이냐” “글쎄 그것이 참말로 요상스럽게 생겼단 말씀이여 이렇게 떡 펴놓고 보면 구멍이 한 두서너군데 뚫렸는디 한 궁기를 탁 튕기면서 ‘썩은 개 창사 도야지 창자 나오너라’ 그러면 썩은 개 창서 도야지 창사가 하루에 수천발 꾸역꾸역 나오고, 또 한 궁기를 툭 튕기면서 ‘병아리 새끼들 나오너라’하면 병아리 새끼가 하루에 수천마리가 꾸역꾸역 나오고 그 좋은 보물을 임자 찾아 못 전하고 저 무주공산에다가 두고 죽게 생겼으니 그 아니 딱한 일이요” “야 이놈 토끼야” “네” “네가 너를 살려 보내 줄 것인게 그거 날 줄래” “저기 석산 바위 틈에 있쇼 저것 좀 보시오 까마귀 까치들이 그 냄새를 맡고 날리가 났소” “그럼 가자” 이 놈이 토끼 대굴박을 수주병 차듯 탁 차고 훨훨 날아가서 선삭 바위 틈 밑에다 턱 내려놓고 “여기냐” “네” “너 이놈 토끼야” “네” “내가 시장해 죽겠으니 너 안에 들어가서 잔꾀 부리지 말고 얼릉 가지고 나와” “허이고 장군님 나를 그렇게 못 믿겄오 나를 그렇게 못 믿겠거든 내 발목을 딱 잡고 계시다가 내가 쪼금씩 놓아달라는 대로 좀 놔 주십시오” “그럼 그러자” 이 토끼란 놈은 원래 꾀가 많은 놈이라 바위틈에다가 지 발을 딱 버티고 “장군님 발이 닿을 만 하여 조금만 놔주시오” “그럼 그러자” “장군님 쪼그만 더 놔주시오 조금 조금하다가 뒷발을 탁 차고 안으로 쏙 들어가서 느닷없이 시조반장을 읊으것다 “세월이 여류허여” “너 이놈 토끼야 내가 시장해 죽겠는데 니가 한가한 체하고 안으로 쏙 들어가더니 시조를 부르고 자빠져있어 얼릉 의사줌치 안 갖고 나와” “너 이놈아 너 여기는 다시는 안 나올라니” “내가 인제 노래에 문밖 출입 헐 수도 없고 집안에 들어 앉아서 손자나 봐 주고 자봉이나 즐길란다 이것아 이것이 바로 의사줌치 아니냐”

엇중모리
독수리 그제야 놀린 줄을 알고 훨훨 날아가고 별주부 정성으로 대왕 병 직차하고 토끼는 그 산중에서 완연히 늙더라 그 뒤야 뉘 알 소냐 더질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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