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1978)

박은옥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
당신의 텅빈 가슴으로 불어오는 더운 열기에 새찬 바람

살며시 눈 감고 들어봐요 먼 대지 위를 달리는 사나운 말처럼
당신의 고요한 가슴으로 닥쳐오는 숨가쁜 벗들의 말발굽 소리
누가 내게 손수건 한장 던져주리오
내 작은 가슴에 얹여주리오
누가 내게 탈춤의 장단을 쳐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후렴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처럼
하늘에 빗긴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테요

우산을 접고 비 맞아봐요
하늘은 더욱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서
당신의 그늘진 마음에 비 뿌리는 젖은 대기의 애틋한 우수
누가 내게 다가와서 말 건네주리오
내 작은 손 잡아주리오
누가 내 운명의 길동무 되주리오
어린 시인의 벗 되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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