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레이(Francis Lai) 세계적인 대 히트곡을 수업이 발표한 위대한 멜로디 메이커로 불리우는 음악가 프란시스 레이는 1932년 4월 26일,
남프랑스 니스에서 화원을 경영하는 아버지 가비노와 어머니 안제르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음악애호가인 양친과 아코디오니스트로 활약했던 사촌형 파스칼 데루카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악기, 특히 아코디온에 친숙해
있었다.
파스칼은 또한 재즈 애호가여서 베니 굿맨이나 아티 쇼의 음악을 자주 들려주곤 했다고 한다.
그는 고향에 있는 리세 산 필립을 졸업하고 음악공부를 계속하면서 캬바레나 카지노의 악단원으로서 생계를 잇기도 했고, 레이 자신이 그 당시에
영향을 받았던 뮤지션으로 아스토르 피아솔이나 챨리 파커의 이름을 들고 있다.
그후 55년 순회공연을 위해 온 악단에 참가하게 되고 거기에서 여성가수 클로드 고아티를 만난 것이 레이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해
준다.
고아티를 믿고 파리로 온 레이는 몽마르뜨에 살면서 거기에서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갖게 된다.
그 중에서 시인인 베르나르 디메가 있었는데 그를 통해서 무르지나 이브 몽땅, 줄리엣 그레코, 그리고 에디트 삐아프등의 지기를 얻게 되어
그들을 위해서 샹송을 쓰기도 하고 연주도 하게 되었다
미쉘 마뉴 악단의 일원으로서 아랑브라 극장에 출연한 레이는 피에를 발을 만나 고아티를 위해 작사를 했었다는 것을 이유로 의기투합하게
된다.
이윽고 삐아프의 밑에서 반주와 작곡을 담당하게 된 레이느, 점점 두각을 나타내어 같이 음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존재가 되어간다.
63년, 삐아프가 사망하자 피에르 발과 콤비를 이루어 가수로서 유로비젼 콘테스트에 나가기도 하고, 레코드를 내기도 했으나, 사람들에게 거의
잊혀진 상태가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발에게 이끌려서 그가 출연중이던 영화 "아가씨와 대포"라는 영화의 촬영현장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끌로드 를르슈를
만난다.
작품으로는 <남과 여>,<애인>,<물거품의
노래>,<빌리티스>,<러브스토리>,<헬로 굿바이>
<화려한 대결>,<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사자라고 불리우는 사내>,<레미 제라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