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어사또 동헌에 좌정허신 후,
“수도안 올려라.”
수형리가 수도안 올리니 어사또 보시고 옥에 갇힌 죄인들의 죄지경중을 헤아려 처견 방송 허신 후,
“옥 죄인 춘향 올려라.”
영이 나니,
[중모리]
사정이 옥쇄를 몰아들고 충충충 나가더니 용수 없이 잠긴 열쇠를 절그렁청 열 떠리며,
“나오너라, 춘향아. 수의사또 출도후으 너를 올리라 영 나리시니 지체말고 나오너라.”
춘향이 이 말 듣더니 정신이 아찔허여,
“아이고, 인자 죽는구나. 여보시오 사정 번수, 삼문 밖에나 옥문 밖에나 추포도복 헌 파립의 과객 하나 못 보았소?”
“아, 이 사람아, 이 난리통에 우리 조부님도 몰라보게 되었는디 누구를 봐, 어서 나오소.”
“아이고, 어디를 가겼는고? 갈매기는 어디 가고 물 들어오는 줄 몰라있고, 사공은 어디를 가고 배 떠나 가는 줄 몰랐으며 우리 서방님은 어디를 가시어 나 죽는 줄을 모르신고? 이 내 한 몸 죽어지면 칠십당년 우리 모친 봉양을 뉘랴허며, 다정허신 우리 낭군 옛 언약을 아니 잊고 나를 찾어 외겼다가 이 몸 죽어 없고보면 회행허여 올라가며 날 생각고 우는 설움, 그 설움이 오직허리. 아이고 이 일을 어쩔꼬?”
이렇듯 자탄허며 삼문간을 당도허니 벌떼같은 군로사령 춘향을 끌어들여,
“옥 죄인 춘향 올렸소.”
“해칼 허여라.”
“해칼 허였소.”
“춘향 분부 모아라. 너는 천기의 자식으로 관장 능욕을 허였다 하니 그리허고 살기를 바랠까?”
“절행에도 상하 있소? 명백허신 수의사또 별반 통촉 허옵시오.”
“네가 일정한 지아비를 섬겼는고?”
“이부를 섬겼네다.”
어사또 이부 말을 듣더니 분기가 충천허여,
“네가 열녀라 하며 이부를 섬기다니.”
“두 이자가 아니오라 오얏 이자 이부로소이다.”
“네 말이 그럴진대 내 성도 이가니 네 뜻이 어떠헌고?”
“분부가 그러허오면 아뢸 말씀 없사오니 죽여주오, 죽여주오. 어서 급히 죽여주면 혼비중천 높이 날어 삼청동을 올라가서 이몽룡을 보겄네다. 어서 수이 죽여주오.”
“안될 말이다. 여수 황금이 임자가 각각 있느니라.”
어사또 지환 내어 주시며,
“네 이것 춘향 주어라.”
춘향이 그 말 듣고 받어 볼 리가 없지마는 막상 몰라 받어보니 제가 끼든 지환이로구나. 춘향이 지환 보더니 두 눈이 침침허여 무뚜뚜루미 바라보더니 지환을 들어 손에 끼고,
“얼씨구나, 살었네.”
춘향이 급헌 마음 우루루루 올라가련마는 형문 맞은 다리 더덕이져 벌벌벌 떨면서 일어서니 어사또 그 거동을 보시고 기생들을 명허여 춘향을 부축헐 제, 춘향이 올라와 보니 춘풍매각 큰 동헌에 맹호같이 좌기허신 어사 낭군이 좋을시구. 어사또 뒤로가서 허리 굽혀 등에 얼굴대고,
“마오마오, 그리 말어. 기처불식 헌다는 말은 사기에도 있지마는 날조차 그러실까. 지내간 밤 오늘까지 간장 탄 걸 헤아리면 살어있기가 뜻밖이오. 얼씨구나 절씨구, 지화자 좋네. 좋을 좋을 좋을씨구. 외로운 꽃 춘향이가 남원옥중 추절이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동헌에 봄이 들어 이화 춘풍이 날 살렸네. 얼씨구나 절씨구, 지화자 좋네. 지화 지화 좋을씨구. 우리 어머니는 어디를 가겨 나 살어난 줄을 모르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