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란 그 마을엔
부자가 살지 않았다
가난이 보통이어서
아무도 가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순하여
다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가끔 들리는 큰 목소리는
거나하게 술 취한 아버지가
마을 입구부터 목청껏 부르시는
매기의 추억 처음 몇 소절
택시가 들어오지 않는
좁고 굽은 골목에서
아이들은 만만하게 뛰놀았다
숙제를 안 하고 늦도록 몰려다녀도
어른들은 나무라지 않았다
어쩌다 축구공이 생기는 날엔
마을에서 제일 넓은 향교 마당에
사내 아이들이 모여들어
몸에서 쉰내가 나도록 공을 차고
심심한 여자 애들은
괜히 그 언저리에서 놀았다
넓은 마당에선 일년에 두 번쯤
영화를 돌렸고
수없이 빗금 치는 화면을 보며
포대기 두른 아낙이나
팔뚝 굵은 사내나
함께 웃고 함께 눈물을 훔치다
영화가 끝나면
모두가 해피 엔딩의 주인공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자란 그 마을에선
아이들이 미루나무처럼 잘 자랐고
어른들은 아이처럼 늙어갔다
아무도 가난을 어지럽히는 이가 없었다
아무도 가난을 어지럽히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