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놀이
숲 놀이
슬픈 놀이,
는 아니고
놀이라는 건 정의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어찌보면
해학까지 담겨있는 것이며 무조건 즐거운 게 아닐까
한다네 놀이, 놀이,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서 희생되는
잔인한 사연들도 이 세계에는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뭐
인간은 그런 식으로 지어지지 않았다지,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서 누군가가 희생될 수는 없다네
타인을 괴롭히면서 웃고 있는 누군가의 웃음은 결국 진실한
웃음은 아닌 법이고, 그의 영혼은 메말라가며 죽어가고 있겠지
사람의 영혼이라는 건 그처럼 잔악한 짓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기에,
아무튼 숲 놀이 숲 속에서 어느 바깥 세상과의 연결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듯한 종족 민족이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문화의 고유성을 지켜가면서
만들어낸 어느 축제의 한 일부,
뭐 그런 장면들을 생각하면서 적당히 뚱땅거린 곡 속의
가사는 어떤 게 좋을런지
자원이 그리 풍족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아마
원시적인 형태의 여러가지 목재 기구들 따위,
그리 깊지 않은 과학적 기술의 산물들을 가지고 벌이는
축제의 장면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숭고함을 느낀다거나, 즐거움을 느낀다거나,
할 것도 같다네,
민속적 놀이라는 게 대개는 그러하지,
민속성, 토속성이라는 게 언제나 고귀하며 또
올바른 쪽으로만 발전하는 건 아니지만은 말이야
사람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지어지지 않았지만
사람의 죄 또한 사실이라,
가만히 두면 영 좋지 못한 곳으로 발전을 하고
잔악한 것을 문화라는 이름 하에 용인하기도 하고, 그러기에
사람의 원죄, 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면
그저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는 것만으로 모든
행동이나 양식들을 정당화할 수는 없게 되겠지 뭐 아무튼
숲 놀이,
숲 속에서, 어린 아이들도, 즐길 수 있을만치,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될만한 즐거운 놀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의 경치가 생각나네,
사람은 꼭 많은 것을 가져야만 풍족하다고 느끼고 또
행복감을 얻으며 살지는 않지 누군가는 부족함 속에서
도리어 마음의 평안함과 풍족함을 반증적으로 느끼고 실감하며
살아갈 수도 있지
방글라데시, 인가 어디였던가, 뭐 그런 나라들도 있잖소,
돈이 많아야만 즐겁고 또 행복할 수 있다는 건 머저리나 할 수
있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소
뭐 돈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은
그것을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갈리고 달라지는 것이겠지
나쁜 이의 손에 들어가면 악하게 쓰이는 것이 돈일 것이며
또 자제심이 별로 없는 연약한 인간의 손에 들어가더라도
종래에는 그 인간의 삶을 망치게 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어지네
깊어지네
밑 터진 내
둑 속의 울음들은
구슬처럼 스러지고
그만뒀던 일들만이
아스라이 기억 한 켠에
남아서 생각에 머물러 있구나
깊구나 짙구나 상념아 보낸 사랑아
사랑을 말하는가 다 떠내 보낸 사람아
강자와 약자도 없는 게 사랑이라
그 앞에선 노인이나 어린이나 다 무릎을 꿇고
그저 담담히 자신의 인생 한 켠에 묻어두었던
추억들을 흩날리듯
켜켜이, 켜켜이, 한 켠의
페이지들을 접어두고 살펴보고, 이내 못 잊어 다시 펼쳐보고
그렇게 구는구나
두는구나, 두었구나, 미련처럼 남은 사람아,
사람은 사랑을 하며 살아서 사람이라지
가난한 사람조차 사랑을 하며 마음에 사랑이 없는
이만이 역설적으로 사랑을 할 수 없다지
그대는 돈 대신 무엇을 쥐어서 지금까지 살아 남았는지
음악을 듣는 순간이 그대의 잠 한 켠에 있기를 바라네
고요한 잠 속에 뻗어나간 여러가지 상념의 가지들은
그대의 밤을 길게 이어나가게끔 만들며
오늘 하루의 시간을 더, 짖궃게 끌어가네
심장이 아직도 뛰니
오늘 밤도 보내겠구나
아직도 죽지 않은 그대는 하루를 더 살았고
다음 고개를 넘어 또 그 다음 날의 하루를 보았고
시를 적은 미치광이는 머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지난 일들에 대한 후회만, 후회만, 후회만,
숲, 놀이에서 시작한 글감은 어디로 떠밀려와
헛소리를 적었소만
맹세컨데 술에 취하지는 않았구만
구면인 듯한, 숲 놀이, 그 마을 속의, 전통 놀이,
속에 모여 떠드는 사이사이,
아는 면면들이 스쳐 지나가며,
옛 상념들을 풀어내 보았구나,
놀이란 관습이며 형식이라, 그 속에 제의를 품고 있어
먼 옛날을 추억하거나, 혹은 하늘 위의 주를
바라기 좋은,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네
사람은 누구나 신앙심을 가지며
무신론자조차 그것을 바란다는 게, 사실이지
사람은 스스로는 홀로 살 수 없는 생물이라
늘 이해와 공감자를 바라고
홀로 있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의 그 감성을
이해해 줄 누군가를
끊임없기 간절하게 바라며 부르짖고 살아가는 거지
예전에 잃어버렸던 아버지를 간절하게
부르짖는 것과 같지
이 세상에 떠밀려 살게 된 나그네
객 넋이 다 우리라오
그리하여
숲 속에서만 살아가는 폐쇄적인 민족들이라 할 지라도
결국은 도시 속에서나 어디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결론적으로 같은 마음의 구멍을 가진
동료요 또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지
이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