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한 농사꾼이 살았어요. 이 사람이 사는 동네에는 큰 강이 하나 있었는데, 그해 여름에 비가 많이 왔어요. 강물이 불어서 흙탕물이 콸콸콸 내려왔어요.
하루는 농사꾼이 강가에 나가 보니, 저 위에서 노루 한 마리가 허우적거리며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어요.
‘저런! 노루가 물에 빠졌구먼! 어서 구해주어야겠다. ‘
농사꾼은 긴 장대를 가져와 노루를 건져줬어요. 물에 흠뻑 젖은 노루를 잘 닦아주고 집에 데려가 정성껏 보살펴 주었어요.
“노루야, 우리집에서 잘 먹고 건강해 지거라. 허허.”
이튿날, 농사꾼은 또 강가를 지나게 되었어요. 이번에는 뱀 한 마리가 흙탕물에 휩쓸려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어요.
‘비록 징그러운 뱀이지만 네 목숨도 귀한 것일 테니, 내가 구해주마.’
농사꾼은 이번에도 긴 장대를 뻗어서 뱀을 구해주었어요. 집에 데려와 마른 짚더미 위에 올려놓고 돌봐주었어요.
그 다음 날, 농사꾼이 또 강가에 나가 보니, 이번에는 웬 남자 하나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떠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앗!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거 잡으세요!”
농사꾼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고 집에 데리고 와 먹이고 입히며 정성껏 돌봐주었어요. 며칠이 지나 비가 그치고 강물도 줄어들었어요. 노루도, 뱀도, 사람도 기운을 차렸으니, 농사꾼은 모두들 제 갈 길로 가라고 말했어요. 노루는 폴짝폴짝 뛰어나가고, 뱀도 혓바닥을 날름날름하면서 수풀로 사라졌어요. 그런데 사람은 갈 곳이 없다며, 시키는 대로 일을 열심히 하겠으니 여기에 좀 더 머물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는 거에요. 마음씨 착한 농사꾼은 그러라고 했어요. 농사일도 가르쳐주며 한식구처럼 잘 해주었지요.
그러고 살기를 몇 달이 흘렀어요.
“이제 제법 날씨가 선선해졌는걸!”
농사꾼이 마당을 쓸고 있는데, 어디선가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났어요. 저 멀리서 노루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서 다가오는 거에요.
“노루야! 너는 그 때 내가 물에서 건져준 그 노루가 아니냐? 반갑구나. 그래, 어떤 일로 나를 다시 찾아왔느냐?”
그랬더니 노루는 농사꾼이 반가워서 덩실덩실 뛰더니, 농사꾼의 옷자락을 물고 잡아끄는 것이었어요.
“노루야, 어디로 가자는 게야? 그래 알았다 알았어.”
노루는 농사꾼을 깊은 산속으로 이끌고 가더니,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자꾸 발로 땅을 파는 시늉을 했어요. 농사꾼이 이상해서 땅을 파 보았더니, 거기에는 커다란 산삼이 뭍혀 있었어요!
“허허, 이 귀한 산삼이 이리도 큰 것은 처음 보는구나!”
노루는 옆으로 가서 또 발로 땅을 파는 시늉을 했어요. 거기도 파보니 더 큰 산삼이 떡하니 뭍혀 있었지요. 이러기를 수십 번 반복하니, 농사꾼은 커다란 산삼을 오십뿌리나 캤지요. 농사꾼은 산삼을 시장에 내다팔아 금세 부자가 되었어요. 논도 사고 밭도 사고, 대궐 같은 기와집에 일꾼도 여남은명 둔 큰 부자가 된 것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부자가 되고 나니, 물에서 건져주었던 사람이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자꾸 돈을 달라고 했어요. 마음 약한 농사꾼이 조금씩 돈을 주었더니 노름판에 가서 몽땅 잃고 돌아오는 것이에요. 다음날도 돈을 주면 술을 진탕 마시며 돈을 다 써버렸어요. 농사꾼이 더 이상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그 다음날에는 몰래 돈을 훔쳐다가 많은 돈을 흥청망청 써버렸어요. 농사꾼은 몹시 화가 났어요.
“이보게. 자네가 물에 빠져서 건져주고, 일도 주고 밥도 주고 잠자리도 주었는데, 열심히 일하기는 커녕 도둑질을 해서 돈을 마구 쓰다니! 도저히 자네와 같이 살 수가 없으니 오늘 당장 나가게!”
그랬더니, 이 사람은 똥싼 놈이 화내는 격으로, 도리어 대드는 거에요.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요? 한 집에 살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억울해서 가만히 안 있겠어요.”
남자는 그 길로 관가로 가서 원님에게 거짓으로 고자질을 했어요.
“사또! 저를 구해준 농사꾼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것을 아시지요? 정직하게 돈을 번 것이 아니라 부잣집을 돌아다니며 도둑질을 해서 모은 돈으로 저리도 잘 사는 것이랍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농사꾼은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려 그만 감옥에 가게 되었어요. 옥에 갇힌 농사꾼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 숨만 푹 쉬었어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놨더니 이렇게 나를 배반하고 도리어 내게 악한 일을 하는구나. 짐승도 은혜를 갚는데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 흑흑.’
바로 그때, 옥문 사이로 뱀 한 마리가 스르르륵 기어들어왔어요. 가만 보니, 예전에 물에서 구해주었던 그 뱀이었어요!
‘뱀아! 네가 나를 구해주러 오느냐?’
농사꾼은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뱀이 습습습습~ 하며 다가오더니 갑자기 농사꾼의 다리를 꽉 깨물고는 금세 사라졌어요.
“아야! 이 나쁜 뱀아,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게냐!”
뱀에게 물린 다리는 눈 깜짝할 새에 퉁퉁 붓고 독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어요.
농사꾼은 이제는 틀렸구나 하며 절망하고 있는데, 아까 그 뱀이 다시 스르르륵 기어들어오지 뭐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입에 푸른 잎사귀를 하나 물고 왔어요. 뱀은 잎사귀를 아까 물었던 상처에 척 갖다 댔어요.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상처가 싹 가라앉고 아무는 것이었어요!
“거 참 신기하구만. 이 잎사귀가 뱀독을 풀어내는 약초인 게로군!”
농사꾼은 그 잎사귀를 품 속에 잘 넣어두었지요.
다음 날 아침, 관가가 떠들썩한 것이 무언가 심상치 않았어요. 사또가 간밤에 뱀에 물려 다 죽게 되었다는 거에요! 농사꾼은 옥문 지키는 옥졸을 불렀어요.
“제가 사또를 살려드리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사또 앞에 서게 된 농사꾼은 품 안에서 그 잎사귀를 꺼내어 상처 위에 대었어요. 그러자, 검게 변했던 피부는 하얗게 변하고 혈색이 돌기 시작했어요. 상처도 이내 아물었지요. 사또는 그 잎사귀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요. 사또가 기운을 차리고 말했어요.
“고맙네. 내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네. 그런데 자네는 어찌 그리 신통한 약초를 가지고 있는가?”
“예 사또. 실은 제가 구해준 뱀이 가져다 준 약초이옵니다. “
농사꾼은 사또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다 말했어요.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보은하는 짐승도 있는가 하면, 도리어 배신하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모든 이야기를 들은 사또는 농사꾼을 풀어주고 큰 상을 내렸어요. 그리고 누명을 씌운 남자를 옥에 가두었어요.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