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죽음

정태춘 & 박은옥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고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밖으로 나까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현관문도
잠가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방바닥에 엎드린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 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 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구조로 돼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나가고 어미니도 돈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 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는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줄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먹어 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밖엔
또 할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지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 저기 옮겨 붙고 훨, 훨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눈에도 훨, 훨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
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아빠...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 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 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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