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개씨의 방문

오늘
앨범 : 어서오세요, 고양이 식당입니다 5
작사 : 오늘
작곡 : Mate Chocolate
세상에는 상극이라는 게
있습니다.
악연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까요.
살아가며 만나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관계, 그런 존재를
발견한다면 서둘러 피하는 것이
좋겠죠. 그럴 수 있다면 말입니다.
묘령동 골목 끝에도 초겨울을
알리는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한기와 함께
오늘의 손님이 고양이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어서 오시죠.”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
오동통한 몸, 풀이 죽은 듯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말랑하고 귀여운 인상. 흠,
오늘의 손님은 물개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주방장님.”
바다의 짠 내를 가득 품은
물개 씨의 머리카락이
물풀처럼 찰랑거립니다.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은 물개 씨는
두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파묻습니다.
고민이 깊어 보이는군요.
이럴 때는 역시 만월주만한
것이 없습니다. 건너편에 앉은
물개 씨에게 잔과 만월주를
건네고 조리를 해야 할
재료를 살펴봅니다.
오늘 사용할 재료는 깨끗이
세척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허드렛일은 꼬마녀석에게
맡기면 좋을 텐데. 뭐,
어쩔 수 없죠. 녀석은
이제 식당을 떠났으니.
물개 씨가 만월주를 잔에
따르는 사이, 저는 거대한
비료 포대를 통째로 들고
개수대로 가, 반짝이는
싱크볼에 식재료를 쏟아붓습니다.
영락없이 감자로 보이는
거무튀튀한 것들이 수북이
쌓입니다.
쏴아아-
수도꼭지를 돌리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을 잠시 바라보는 사이,
물개 씨가 묻습니다.
“감자인가요?”
“아닙니다.”
잠시 의아한 얼굴로 식재료를
바라보던 물개 씨는,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다시 한숨을 내쉽니다. 화덕에서
끓고 있는 수프를 확인하는 사이,
연거푸 잔을 들이키던
물개 씨가 만월주 한 병을
금세 비웁니다.
“더 있나요, 이거?”
곤란하군요. 아직 음식값은
조금도 받지 못했는데.
“…잠시만 기다리시죠.”
저는 한쪽 수염이 꿈틀거리는
것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냉장고 깊이 숨겨져 있던
병 하나를 꺼냅니다. 별을
갈아놓은 듯 은은한 빛을 띠는
술을 물개 씨의 앞에 내려놓습니다.
겨울에 특히 맛이 좋은
산호주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아흔 아홉 가지
산호를 달빛에 말려 빚은
술입니다. 깊은 바다향을
머금고 있어 특히 물고기들이
좋아하는 술이죠.
물개 씨도 태생이 바다생물이니
분명 좋아할 겁니다.
“아……!”
커다란 물잔에 산호주를 콸콸콸
따르는 물개 씨를 보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물개 씨가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묻습니다.
“왜요?”
교양있는 고양이는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한두 살 먹은
고양이도 아닌데 손님 앞에서
큰 소리를 내다니요. 하지만,
저렇게 우악스럽고, 채신머리없이,
경박하게 마실 거였다면,
산호주 같이 귀한 술 대신,
인간들이 마시는 맥주나 막걸리
따위를 내어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몹쓸 생각을 했군요.
어떤 손님에게라도 최선의
요리를 내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요리사의 의무이자
자부심이니까요. 잠시
평정심을 잃었지만,
저는 고양이입니다.
인내심을 발휘할 줄 아는 동물이죠.
고개를 가로저으며
개수대로 가서 수도꼭지를
잠급니다.
맑은 물에 흙이 섞여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습니다.
“주방장님, 괜찮으신 거죠?”
물개 씨가 걱정스러운 듯
묻습니다.
“네.”
음식값을 톡톡히 받아내야겠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뜯어내야,
만월주에 산호주를 더한
값을 충당할 수 있을까요.
개수대에서 식재료를 박박
닦으며 생각에 잠긴 사이,
물개 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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