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음수령 모아들제

안숙선
앨범 : 춘향가

춘향모와 향단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어사또는 내일 거사할 일을 생각허며
이리 저리 거닐 적에 날은 벌써 밝은 지라
이날은 본관 사또 생신 잔치날이라
날이 늦이막하니 각읍수령들이 모아 드는디
각읍수령 모여들 제 인물좋은 순창군수 (淳昌郡守)
임실현감 (任實縣監) 운봉 (雲峰)영장
자리호사 (好事) 옥과현감 (玉果縣監)
부채치례 남평현령 (南平縣令)
울고나니 곡성 (谷城)원님
문무 (文武)좋다 강진 (康津)원님
사면 (四面)으로 들어올 제
청천 (靑天)에 구름 뫼듯
백운 (白雲) 중에 신선 (神仙) 뫼듯
일산 (日傘)이 팟촉지어 행차 (行次)따른 하인들
통인 (通引) 수배 (首陪) 급창 (及唱)
나졸 (邏卒)들이 야단이로구나
본관사또 (本官使道) 주인이라
동헌 (東軒)에 포진 (布陳)을 헌다
분합문 (分闔門)을 높이 달고
백포장 (白布帳)으로 해를 막고
육간 (六間) 대청 너른 마루
화문석 (花紋席) 호피 (虎皮)도둠
안석 (案席) 탁구 (唾口) 재떨이
좌촉롱 (坐燭籠) 청사 (靑紗)입혀 불 킬 듯 달어놓고
녹의홍상 (綠衣紅裳) 기생들
채색단장 (彩色丹粧) 착전립 (着戰笠)
오락 가락에 노는 양 (樣) 내하 (內下)에 봄이 들고
음식이 풍부헌디 풍악 (風樂)이 낭자 (狼藉)헌다
통인불러 새면치고
기생은 마주 서서 배따라기 연풍대 (筵風擡)
쌍검무 (雙劍舞) 보기 좋고
생황 (笙簧) 양금 (洋琴) 줄풍류 피리 젓대 풍악 소리가 원근 (遠近)에 낭자헐 제
그때여 어사또는 조반 (朝飯) 많이 먹고
동헌 (東軒)에 급히 가서 구경꾼 함께 섞여
이리 저리 다니다가 신명이 우쭐나니
여가 기웃 저가 기웃 여가 우쭐 저가 우쭐
대상 (臺上)으로 뛰어 올라
"좌중 (座中)이 평안하오"
통인 급창 달려들어 옆 밀거니 등 밀거니
귀퉁이 겹빰 치니 어사또 기가 막혀
상 (床) 기둥을 꽉 붙들고
"에라 이놈들 가난한 양반 옷 찢어진다
기둥 뿌리가 빠졌으면 빠졌지
내가 나갈 사람 같으면 여기를 왔겄느냐?
나를 쫒아 내라는 놈은 쇠아들 놈이오
나가는 사람은
인사불성 (人事不省)이니라"
운봉 (雲峰)이 무변 (武邊)에 벼슬허던 양반이라
눈치있고 재치있어 어사또를 바라보니
분명 일이 든 듯 하여 하인을 꾸짖더니
"여보시오 본관 양반 저 분을 보아허니
의복은 남루하나 양반이 분명헌디
시속 (時俗)에 상한 (常漢)들이 양반을 모르오니
관장 (官長)된 우리네가
양반을 대접 아니허면 뉘가 하오리까?
말석 (末席)에 좌 (座)를 주어 한잔 대접 하옵시다"
"그러시다니 운봉 뜻대로 하시오마는
저런 사람은 하인청 (下人廳)에서 대접 해야 될 텐데 진찮은 일이오" 운봉이 사령들을 호령하며
"에라 네 그 양반 이리 모셔라"
어사또 이 말을 듣더니 신발 벗고 발에 먼지를 털며
혼자 말로 군담 허되
"안다 안다 운봉이 아는구나
운봉이 과만 (瓜滿)이 되었으나
가삼년 (家蔘年)을 시켜보자"
선뜻 올라 운봉 옆에 앉으니
운봉이 사령들께 분부하여
"여봐라 이 양반께 술상 차려 올려라"
물색 모르는 사령들이 어사또 상을 차렸으되
모 떨어진 개 상반 (床盤)에
긁어 먹던 갈비 한 대 건져 먹던 콩나물국
병든 대추 묵 전포 뻑뻑한 먹걸리를
어사또 앞에 갖다 놓으며
"어서 먹고 속거천리 (速去千里)"
어사또 운봉 옆으로 바싹 앉으며
"운봉 영감 여러 관장네 입이나 이런 과객의 입이나
입은 마찬가질 테니 나도 그 약주 한 잔 주오"
운봉이 받었던 술잔을 주며
"자 이 술 자시오"
어??또 술을 받어놓고 부채를 거꾸로 들더니
운봉 옆구리를 쿡 찌르며
"운봉 영감"운봉이 깜짝 놀래
"허 이 양반 왜 이러시오"
"저기 저 상에 갈비 한 대 좀 먹게 해 주오"
"아 이 양반아 갈비를 달라면
익은 쇠갈비를 달라 헐 일이지
사람의 갈비를 그렇게 찌른단 말이오
네 여봐라저 상의 갈비 내려 다 이 양반께 올려라"
"그만 두오 얻어 먹는 사람이
남의 수고까지 빌릴 것 있나?"
벌떡 일어나더니 이 상 저 상 다니며
진미 (珍味)만 잔뜩 갖다 놓고
"허 이래 놓고 보니 내 상도 볼품이 나는구나"
부채 꼭지로 운봉 옆구리를 또 꾹 찌르며
"여보 운봉"운봉이 질색하여
"아니 이 양반 미쳤소? "
"내가 미친 게 아니라 기생 보니
술을 그대로 먹을 수가 있소?
저기 본관 곁에 앉은 기생 불러
날 권주가 (勸酒歌) 한마디 시켜주오"
"글쎄 권주가는 좋으나 그 부채 좀 놓고 말씀 하시오
옆구리 창 나겠소. 네 여봐라 저 기생 이리 와
이 양반께 권주가 한자리 불러 드려라"
기생이 일어나며 관장의 말이라 거역할 수도 없고
아니꼬운 태도로"참 별꼴을 다 보겠네
간 밤 꿈에 박작을 쓰고 벼락을 맞아 보이더니
별 놈의 꼬락서니를 다 보겠어"
어사또 들으시고
"이 얘 네 꿈 영락없이 잘 꾸었다
박작을 쓰고 벼락을 맞어?
하하하 흉몽대길 (凶夢大吉) 이로다
무슨 좋은 수가 있겠다
어서 권주가나 불러 보아라"
진실로 이 잔 곧 받으시면
천만년이나 이 모양 이 꼴
어사또님이 기가 막혀
"너 어디서 권주가 배웠는지 참 잘헌다 명기로다
권주가를 들어보니 새로 난 권주가로구나
이 술 너와 둘이 동배주 (同杯酒) 허자"
기생에게 술을 권 하거니 기생은 안 받을라거니
밀치락 달치락허다 술이 자리에 쏟아졌구나
"허 점잖은 좌석에 좋은 자리를 버렸도다"
도포 (道袍) 소매 술을 적셔
좌우로 냅다 뿌려 놓으니 좌중이 발동하여
"이런 이런 운봉은 별 것을 다 청하여
좌석이 이리 요란허요"
본관이 불쾌하여 운자 (韻字)를 내어
걸인 (乞人)을 쫒기로 허겄다
"자 좌중에 통헐 말씀이 있소
우리 근읍 (近邑) 관장들이 모여 노는 좌석에
글이 없어 무미 (無味)허니
글 한 수씩 지음이 어떻겠소?"
"좋은 말씀이오`
"만일 문자 (文字)대로 못 짓는 자 있으면
곤장 댓개씩 때려 밖으로 내 쫒읍시다"
"그럽시다"
"운자는 본관 영감이 내시오"
본관이 운자를 내는디 기름 고 (膏) 높을 고 (高)
두자 운자 내 놓으니
어사또 함소 (含笑)허며 허는 말이
"나도 부모님 덕에 천자권 (千字券)이나 읽었으니
글 한 수 짓겠소" 운봉이 눈치 있어 통인 불러
"네 저 양반께 지필연 (紙筆硯) 갖다 드려라"
지필묵 갖다 어사또 앞에 놓으니
어사또 일필휘지 (一筆揮之)하야 글 지어 운봉 주며
"운봉은 조용한 틈을 타서
밖으로 나가 한 번 떼어 보시오"
운봉이 받어 밖에 나가 떼어 보니
글이 문장 (文章)이요 글씨 또한 명필이라
고금 (古今)을 막론하고
위정자 (爲政者)는 이 글의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할 여지가 있던 것이었다
그 글에 하였으되
<금준미주 (金樽美酒)는 천인혈 (千人血)이오
옥반가효 (玉盤佳肴)는 만성고 (萬姓膏)를
촉루락시 (燭淚落時)에 민루락 (民淚落)이오
가성고처 (歌聲高處)에 원성고 (怨聲高)라>
금 술동이에 담긴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로 만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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