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고성은 무너진다
쌓였던 먼지를 털어내고
금이 간 벽돌을 고쳐 놓아도
백기가 휘날린다
성문을 활짝 열고서
거들떠보지 않던 것들을 들여보낸다
왕관은 나를 벗는다
옳다고 살았던 허물도
속을 들쑤시고 머리를 조아리게 만든다
몇 바퀴를 돌아야 올까
괜한 걱정만 늘어서
왼종일 애꿎은 시침만 쳐다보았다
기약을 했던 바람이
깊숙이 뿌리부터 날 괴롭히겠지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덧없이 사그라진 얼룩이 될까
그 기준에 맞춰 날 솎아내면
부끄럽지 않은 나로 있어 줄까
먹구름이 몰려온다
매서운 눈발에 잠기고
빗소리에 몸이 떨려와도
변하는 건 또 없었다
바위를 부수고 자라난
황금을 머금은 초목의 숨이 트인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줄 알았어
틀린 방향을 찾은 줄 알았어
아니야
난 그 모든 게 다 나였으니까
피할 수 없는 파도에
본 적 없는 곳으로 끌려가겠지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조금 느려도 묵히면 금이 될까
그 기준에 맞춰 날 솎아내면
부끄럽지 않은 나로 있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