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비에게/전소영
우리는 언제나 흐린 날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한 장으로 다가오는 흐린 바다 위에
오늘은 너에게 부쳐 줄 편지를 쓴다
물결 위에 써 내려가는 애잔한 이야기.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찾아 간
이름없는 호수가에서 너를 만나면
가지런한 글씨처럼 철새들이 날아오르고
물떼새 연한 발자국이 가슴을 밟고 지나간다.
뻘밭 발자국으로 남아 있는 그리움은
바람이 흔들리는 갈대숲으로 실어나른다.
달무리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 수로를 더듬어 가면
다 채우지 못한 편지지 한 장 비속에 젖어 있다.
떨어져 내리는 것은 모두가 그리움 때문이라고
여름의 명치끝을 꾹 누르며 다가오던 그대
계절의 품속에 사랑을 감추고 떠나가던,
오늘은 흘러야 가벼워지는 눈물을 지우고
나는 이렇게 말을 맺겠지
'흐린 날의 사랑은 비를 잉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