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겠다" "아니 양반이 부르시는데
천연 (天然)히 못 간다고?"
"너희 도련님만 양반이고
나는 양반이 아니란 말이냐?"
"흥 너도 회동 성참판의 기출 (己出)이니
양반 아닌 것은 아니로되 우리 도련님 양반과
자네 양반과는 좀 칭하 (層下)가 있제
자네 양반은 절룸발이 양반이니 어서 바삐 건너 가세"
"양반이든 아니든 나는 못 가"
"여보게 춘향이 오늘 이 기회가
시호시호 (時呼時呼) 부재내 (不在內)라
우리 사또 자제 도련님은 얼굴이 관옥 (冠玉)이오
풍채 (風采)는 두목지 (杜牧之)요 문장은 이태백
필법 (筆法)은 왕희지 (王羲之)라
세대 (世代) 충효대가 (忠孝大家)로서
가세 (家勢)는 장안갑부 (長安甲富)라
남편을 얻을테면 이런 서울 남편을 얻제
시골 무지랭이를 얻을라는가?"
"아니 남편도 서울 남편 시골 남편이 다르단 말이냐?"
"암 다르고 말고 사람이라고 허는 것은
서울 산세 시골 산세 다 다르니라 그러니
산세 따라서 사람도 타고 나는 법이여
내 이를테니 들어보소 잉"
"경상도 산세 (山勢)는 산이 웅장 (雄壯)허기로
사람이나면 정직 (正直)허고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 (矗)하기로
사람이 나면 재주있고
충청도 산세는 산이 순순허기로 사람이 나면 인정있고
경기도를 올라 한양터보면 자른목이높고 백운대 섰다
삼각산 세가지 북주가 되고
인왕산 (仁旺山)이 주산 (主山)이오
종남산 (終南山)이 안산 (案山)인디
사람이 나면 선할 때 선하고
악하기로 들면 별악지성 (別惡之性)이라
양반 근본을 논지허면
병조판서가 동성 (同姓) 삼촌이요
부원군 대감이 당신 외삼촌이라
시절 남원부사 어르신네
너를 불러 아니 가면 내일 아침 조사 끝에
너의 노모를 잡어다가
난장형문 (亂杖刑問)에 주릿대 방망이
마줏대 망태거리 학춤을 추면 굵은 뼈 부러지고
잔 뼈 어시러져 얼맹이 쳇궁기 진가루 새듯
그저 솰솰 셀테니 올 테거든 오고 말테면 마라
떨떨 거리고 나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