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9.20.

음악도시

그 남자...♂

흰 수염 고래의 까만 등 같아요~
흰 수염 고래의 까만 등?
그건 세상 모든 것에 다정했던 당신이 까만 밤에 비에 젖은 아스팔트에게 붙여준 별명이었죠...
지금처럼 비오던 밤...
우리는 그 날도 늦도록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을 테고...
당신은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길...
"밤에 비 맞은 아스팔트는 흰 수염 고래의 까만 등...
하얀색 차선은 흰 수염 고래의 하얀 수염...
도로에서 튕겨 나오는 물방울들은 고래 등에서 나오는 분수..."
한번 시작되면 끝을 모르던 당신의 상상력은 덩달아 나까지 신나게 해주었죠...
"그럼 좀 있으면 저 아스팔트가 막 둥둥 뜨겠네요?
그럼 내가 저 길 위에 서 있으면 그 쪽으로 갈 수 있나? 두둥실?"
문득 혀차는 소리가 들려서 고갤 들어보면 열린 방문 틈 사이로 나를 향해 쯔쯔쯔쯔쯔~ 막내동생의 어이없는 눈길...
세상에서 제일 유치했던 대화,,,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절...
이젠 너무... 오래 된 얘기...
하지만 아직도 비오는 밤에 도로 위에 서 있으면 나는 자꾸 꿈을 꾸게 됩니다...
발 밑에 까만 고래 등이 두둥실 떠올라서 나를 어딘가에 있을 당신에게 데려다 줄 것 같은...
비 내리는 밤의 꿈...

그 여자...♀

"이렇게 창문턱에 팔을 얹고 빗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면요,,,
꼭 파도에 발을 담그고 있을 때처럼 내 몸이 슬를르 움직이는 거 같아요...
꼭 고래 등 위에 있는 거 같아요..."
내가 그렇게 말했었죠? 지금도 그래요... 다만 몇달 전 이사를 한 탓에 창밖 풍경은 좀 바뀌었죠...
그 때 내가 살던 집은 작은 길가... 밤이 되면 자동차 한 대 없는 조용하고 좀 무서웠던 길...
그래서 언제나 당신이 데려다주곤 했었는데...
지금 난 커다란 도로변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이 시간에도 차들이 많이 다니죠...
빗소리보다 큰 차소리에 창밖을 내다 보면... 묽게 번진 붉은 립스틱처럼 까만 아스팔트 위엔 자동차 불빛이 어른어른...
어쩐지 슬픈 느낌... 그리고 그제야 떠오르는 당신 생각...
비 오는 날 만났고 비 오는 날 헤어져서 비만 오면 울겠다 생각했었고,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옛날 이야기 같아요...
비가 오면 생각나는 옛 이야기 같아요...
어느새 당신을 잊지 못하는 것보다 당신을 모두 잊는 것이 더 두려운 그런 날이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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