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이장혁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에 노인은 흠뻑 젖고 말았지
가까운 건물로 비를 피해 이 비가 그치길 기다렸지
식어가는 몸은 병든 나무처럼 마르고 힘없는 두 다리는 이미 내 것이 아닌 듯 고장나고
날아오는 총탄들을 뚫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여기까지 용케 잘도 살아 남았는데 고작 저 소낙비가 나는 너무너무도 두렵구나

아들아 잘 지내고 있느냐 딸아 별 탈 없이 사느냐
어젯밤 꿈엔 너희와 함께 따뜻한 저녁밥을 먹었지
멀미를 느꼈지만 기차를 멈출 순 없었어 종착역은 다가오고 이제야 이 긴 여행도 끝나겠지
떨어지는 포탄들을 피해 적들의 시체를 넘고 넘어
이날까지 용케 잘도 난 버텨왔는데 고작 저 빗줄기가 나는 너무너무도 두렵구나

쏟아지는 저 빗속을 뚫고 나를 잊고 달려온 날처럼
그날까지 전진 또 전진하고 싶은데
이젠 고장나버린 두 다리가 너무도 무겁구나
이젠 고장나버린 두 다리가 너무도 무겁구나
이젠 저 빗줄기가 나는 너무너무도 두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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