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던 어느 날에 안주도 없이
막걸리를 마셨어
어머나,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어른이 된 것 같잖아
그 후로 이제 나는 빈 잔 하나로
쓰린 술도 마실 수 있고
짧지 않은 여행도 가방 한 개면
충분하게 되었어
한 벌의 외투로도 몇 년쯤은
불편 없이 잘 지내고
내 이름 석 자도 분명 말하고.
먼 곳도 혼자 잘 가고
어른이 되려면은 영화 몇 편쯤
찍는 건 줄 알았었는데
시간은 결코 멈추지를 않더니
나도 어른이라고 불리네.
정말로 나는 어른이 된 건가
진짜 이렇게 살면 되나
괜찮은 것 같기는 하여서 그냥
이대로 살아갈 마음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비가 내리니
손바닥만 한 부침개 하나
굽는다. 막걸리 안주 하려고
오늘은 그냥 안 마셔
마음이 이리저리 구르는 밤
기분이 좀 신기한 밤
아니 좀 이상하고 울적한 밤
또 한 장 넘기는 책장
또 한 잔 넘기는 술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