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또, 방자 만나 춘향 편지 읽는데

은희진


진양
건너 비탈 애굽은 길로 아해 하나가 올라오는 뒤 초록 대님 잡아매고 과나리봇짐에 윤이리 지팽이 한 손에 툭툭 짚고 엇걸어 올라오며 시절노래를 부르는구나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한양성중을 어이 가리 오늘은 가다가 어데가 자고 가며 내일은 가다가 어데가 잘거나 자룡타고 월강허는 청총마나 가졌으면 즉시 한양을 가련마는 조그마한 요 내 다리로 며칠을 걸어서 가잔 말이냐 어떤 사람 팔자 좋아 일대영화 부귀헌듸 이 놈 팔자 어이 허여 길 품팔이가 웬일인가 내 팔자도 불쌍허나 춘향 신세도 가련허네 낭군 위해 수절한 게 그게 무슨 죄가 되어 월삼동추 수옥중에 명재경각 되었것만 무정허신 구관자제 몽룡씨는 편지일장이 돈절허네 어서어서 한양을 가서 도련님을 뵈옵는 날 서세원을 내가 아뢸라네 어이 가리너 어이를 갈거나

아니리
어사또 그 놈을 지내놓고 가만히 서서 둘러보니 분명히 춘향 편지를 가지고 가는 모양이라 이 애야 아나 이 애야

중모리
이렇듯이 불러노니 저 놈 힐긋이 돌아다보며 대답도 않고 서 있거늘 이 자식 어른이 부르면 썩 오는 것이 도리가 옳지 가만히 서서 보기는 이 놈 이 놈은 남원읍에서 어긋나기로 유명헌 놈이요 어른이나 애들이나 지가 모두다 이겨야만 잘난 줄로 아는 놈인데 어사또를 바라보니 하도 헐게 채려 제 마음에 더 가소롭든 것이었다 어사또 턱 밑에 코 다치게 바싹 들어서며 바쁘게 가는 사람 왜 부르오

아니리
너 어디 사느냐 예 살기는 사람 많이 살다가 다 죽어버리고 나 혼자 사는듸 사요 이 자식 혼자 사는 데가 있단 말이냐 나만 산 게 혼자 산단 말 아니요 으응 이 놈이 남원 산단 말을 나만 산다고 허는 말이로구나 하하하 와따 알아 맞혔오 알아 맞혔오 어이 당신 죽도 안 허고 귀신 다 됐어버렸오 에라 그래 너 지금 어디를 가느냐 양반 독차지헌데 가요 양반 독차지한데라니 아 한양 간단 말이로군 워따메 당신 소강청 뒷문에 다가 움막 짓고 살었오 허 괴씸한 놈이로구나 그래 한양에는 누구를 찾어가는고 나 한양 묵은 댁에 가요 묵은 댁이라 음 너 구관댁에 간단 말이로구나 둬따매 아니 그러고 본 게 당신이 귀신이 아니라 귀신 잡어 먹고 도깨비 똥 싸것소 에라 이 자식 헌데 구관댁에는 어찌허여 가느냐 허허 참 다름이 아니라요 우리 골 열녀 춘향편지 가지고 구관댁에 몽룡씨를 찾어가요 당신 뭣 헐라고 그리 물어쌌오 예 그럼 그 편지를 좀 잠 깐 보자고 워 워 워따매 이 염치없는 어른아 남의 규중편지를 함부로 보잔 말이요 네 이 놈 옛 말에 부공총총 설부진허니 행인임발 우개봉이라 허였으니 내가 잠깐 보고 주면은 되지 않겠느냐 이히히히히 아 여보시오 그 당신 문자 쓰는 것이 기특해서 보여 주는 것이니 얼른 보고 주시어 어사또 편지 받아 보니 춘향 글씨가 분명쿠나

진양
아이고 춘향아 니가 이것이 웬 일이란 말이냐 이것이 모두다 내 죄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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