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

김민기


백구

내가 아주 어리 때였나 우리집에 살던 백구
해마다 봄 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 낳았지
어느 해의 가을엔가 강아지를 낳다가
가엾은 우리 백구는 앓아 누워 버렸지
나하고 아빠 둘이서 백구를 품에 안고
학교 앞의 동물병원에 조심스레 찾아 갔었지
무서운 가죽 끈에 입을 꽁꽁 묶인 채
멍하니 나만 빤히 쳐다 봐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
하얀 옷의 의사선생님 큰 주사 놓으시는데
가엾은 우리 백구는 너무너무 아팠었나봐
주사를 채 다 맞기 전 문 밖으로 달아나
어디 가는 거니 백구는 가는 길도 모르잖아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 음...
학교 문을 지켜주시는 할아버지 한테 달려가
우리 백구 못봤느냐고 다급하게 물어봤더니
웬 하얀 개가 와서 쓰다듬어 달라길래
머리털을 쓸어줬더니 저리도 가더구나
토끼장이 있는 뒤뜰엔 아무 것도 뵈지 않았고
운동장에 노는 아이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줄넘기를 하는 아이 팔방하는 아이들아
우리 백구 어디있는 지 알면 가르쳐 주려마
학교 문을 나서려는데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혼자말로 하시는 말씀이
웬 하얀 개 한 마리 길을 건너 가려다
커다란 차에 치어서 그만.......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 음...
백구를 안고 돌아와 뒷동산을 헤매이다가
빨갛게 피인 맨드라미꽃 그 곁에 묻어 주었지
그날 밤엔 꿈을 꿨어 눈이 내리는 꿈을
철 이룬 흰눈이 뒷산에 소록소록 쌓이던 꿈을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 음...
내가 아주 어릴 때에 같이 살던 백구는
나만 보면 괜히 으르릉하고 심술을 부렸지
라라라라 라 라라라라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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