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제목 없는 밤들을 꺼내어 보면
어제를 산 사람들이
서로 뒷장을 포개놓고 잠들어 있어
붉은 꽃으로 겉표지를 수놓고
단단한 문장으로 제목을 지어도
모든 운명은 결국 검은 글씨로
적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말해도
아니 내 삶은 화려할 거야
(오기는 부리지 않아도 돼)
왜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우리의 밤은 같은 페이지니까)
누군가 망가진 별빛을 따라
늙은 몸을 버리고 사라지던 밤
어제 읽다만 짧은 이별들은
마침표가 없었어 그럴 때면
붉은 꽃이 수놓인 손수건을 꺼내어
어느 소설 속 주인공처럼 흐느껴도
모든 슬픔은 전부
검은 글씨로 적혀져 있다는 것을
그렇게 말해도
내 슬픔은 조금 다를 거야
(오래된 책처럼 낡았는걸)
왜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네 눈물마다 모서리가 해졌어)
아니 내 삶은 너희와 달라 이건 단순한 오기가 아니야
(우리의 밤은 더 깊어지고 같은 페이지를 건너가네)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데 특별해 질 수는 없는 건가
(우린 모두 모서리가 해진 눈물을 가지고 있으니까)
붉은 책들 속 울퉁불퉁한 검은 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