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야 (시인: 김광균)

정경애
♣ 설  야

- 김광균  시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겨울밤 고요히 내리는 눈은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일깨워 슬픔에 잠기게 한다.
이 시에서 감각적인 표현이 극치를 이룬 곳은 4연 “머언 곳의 여인의 소리”로서 관능적인 표현을 속되지 않고 품위 있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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