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버스데이
우리 딸 생일 축하해
직접 얘기 못하고 가서 미안해
엄마가 출장이라
미역국 끓여뒀으니까 밥 꼭 먹고 나가고
새 학기니까 친구들 많이 사귀고
엄마한텐 꼭 얘기해줘야 해
알겠지
예은아 사랑해
엄마가
엄만 날 사랑하지만
내 옆에 있지는 않아
아빤 뭐
못 본 지 3년이 넘었던가
이젠 뭐
아무 느낌도 나질 않아
그리웠던 적이 있었나
기억도 안 날 만큼
아주 오래 전
아빠는 내게
원래 없던 사람 같아
엄마도 나에게는
반투명한 사람 같아
혼자 갔던 입학식
매일매일 조금씩
난 혼자가 되고 있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믿지 않아
어른들의 일 같은 건
다 자기 멋대로지
내가 아플 거란 생각도 안 할 테니
엄마 나 이젠
엄마 땜에 울지 않을래
그런 건 내게 어울리지 않아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처음부터 다시 써
예은아 생일 축하해
오늘은 너의 날이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특별한 하루를 보내도록
세 가지 임무를 줄 테니
지키지 않으면 엄벌에 처함
그 임무는
첫 번째
평소엔 피해다니던 웅덩이를
일부러 밟아
이런 것쯤은 해줘야
두 번째
둘둘 말린 어깨를
기지개처럼 쭉 펴고 걸어봐
이런 것도 좀 해줘야
세 번째
오늘을 즐겨 너
하고 싶은 것들 다 해
하루쯤은 뭐든 괜찮아
편지 매년 똑같은 편지
내가 원한 건 진심으로 쓴
특별할 거 없는 편지
하루라도 진심으로 축하 받고 싶어
롤링페이퍼 말고
늦은 축하 말고
더이상 혼자 보내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