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을 보며 (시인 : 오명규)

정현경, 황은주, 김경선
앨범 : 2집 시인만세
♥ 무등을 보며 ~^*    
 
                           - 오 명 규  詩

내가 처음 무등을 보았을 때
무등은 돌아앉아 허공에 구름몇점 띄우고 살아가는
한낮 밋밋한 산에 불과 했습니다.
내가 근20년 동안 이곳 양림천변에서 교자씨만한
삶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사는 동안
나는 비로서 무등을 보며 사는 기쁨을 익혔습니다.
날이 새면 내가 눈비비며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무등이었습니다.
밤새 옷자락에 묻은 어둠을 털고
한보자기 아침햇살을 안고 내게 환히 다가드는 사람은
오직 무등이었습니다.
무등은 언제나 말이 없지만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다방에서 포장마차집에서 하루살이처럼
끈끈이 살아가는 나를 무등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내가 웃으면 무등은
저만치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내가 울면 무등은
이미 날보고 울고 있었습니다.
내가 한숨을 쉬면 무등도 같이 한숨을 쉬며
무등은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고열로 혼자 신음 하고 있을때 무등은
뜬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한 잔의 술로 밤을 지세우고 있을때 무등은
조심스럽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말이란 한낱
번거롭고 부질없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가슴속에
보석처럼 고이는 눈물을 무등은 읽고 있었습니다.
무등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입에서
바람소리처럼 흘러나오는 한숨을 나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철따라 그의 모습은 달라져도
형님처럼 증조할아버지처럼 큰기침하며 행자수를 바라보는
무등의 얼굴에서 오랑케도 쪽발이도 겁내지 않는
이 나라 백성의 뚝심을 읽었습니다.
무등은 낮게 낮게 발돋움하는 자의 편에서서
무등은 햇살과 흙을 사랑하는 자의 편에서서
무등은 아버지의 아들을 사랑하는 자의 편에서서
세월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천등 번개 지나가고 눈보라가 지나가고 한 시대가 지나가도
무등은 의연히 남아 조용히 아주 조용히
해와 달을 마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등을 처음 보았을때
무등은 안개인듯 구름인듯 잘 보이지 않더니 20년이 지난 오늘
나는 무등을 보고 나는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문득 문득 마주치는 눈빛속에서
석류알처럼 영그는 세상살이하는 이치를
조금씩 조금씩 익히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알겠지만 무등의 그 넓은 가슴
언제나 우리안에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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