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돌아 불어오는 바람결에
너울진 소맷자락 날리고
새하얀 고깔 아래 동그란 얼굴만
연꽃잎처럼 화사한데
그 고운 눈빛 속에 회한이사 없으랴만
연잎에 맷힌 이슬 빛나는 햇살에
눈길 주어 웃는다
이 생의 뜨거운 것 노을 빛 젖어 가려무나
허공의 먼 파도 소리도 연잎 아래 잠들어라
염주알 헤아리는 모타라수에
백팔번뇌 사라지고
그 님의 고운 미소 초저녁 하늘로
자비롭게 번진다
그 마음 구비구비 울리는 풍경에
엉킨 매듭 풀리고
억만겁 하루 같이 흘러온 세월만
초저녁 비에 젖는데
저 맑은 연못 속의 볼 젖은 꽃잎을 보다가
한 걸음 다가서며 나무아미타불
그 님 목소리도 고와라
이 새의 메마른 것 세우보시로 젖으려무나
법당의 먼 불경 소리에 사바세계는 잠들어라
비 젖은 쇠 북 소리 먼 먼 길을
어둠 속으로 떠나고
그 님도 먹장삼에 비 적시며
돌계단을 오른다
(1978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