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여름이 용마등에 타고 앉아
무거운 엉덩이를 꿈쩍할 줄 모르고
모여든 옛 동지들 수건에 땀 훔치니
호기심에 숲의 요정 까치발로 웅성인다
고려국사 배출했던 그 대찰이 맞는지
형제봉 넓은 품엔 돌무더기 나뒹굴고
가을에 찾아오는 지각쟁이 물감 장수
노루목 지나치며 울긋불긋 물들이고
왜란 호란 양 병란에 큰 싸움터가 되어
충양공 전승지 빛바랜 붉은 글씨
호국의 피 어린 잊혀진 석굴 하나
석양에 산 그림자 끌며 외로이 울고 있다
선인들 큰 희생을 온몸에 일깨우며
박새와 곤줄박이 쉼없이 지저귀니
오늘을 사는 행복 더없이 송구하고
내딛는 걸음걸음이 새삼 소중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