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방에서 또 TV를 봐요
어머니는
밥을 하고 계시네
하루 종일
일이 힘드셨나 봐요
아무 말도
안 하시는 걸 보니
철커덕 문을 열고
들어간 집엔
불이 꺼진 방
덩그러니 혼자
어제 먹다 남은 밥은
식었고
밀린 빨랠
돌리고 나서야 난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조차
기억이
잘 안 나
왜 난
힘들었던 장면들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까
이렇게 난 잠이 드는데
아버지는
방에서 또 TV를 봐요
어머니는
밥을 하고 계시네
하루 종일
일이 힘드셨나 봐요
아무 말도
안 하시는 걸 보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둡고
쓸쓸한 달빛이
나를 따라와
골목을 돌아서면
가로등 밑엔
오늘도
넌 거기 그 자리에
내 작은 방은
어제와 같고
유난히
밤은 고요한 듯해
괜히
TV를 틀어
침대에 쌓인 옷들을
걸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하루를 되뇌이다
잠이 들면
아버지는
방에서 또 TV를 봐요
어머니는
밥을 하고 계시네
하루 종일
일이 힘드셨나 봐요
아무 말도
안 하시는 걸 보니
이젠 내가
그 방에서 TV를 봐요
나 혼자
밥을 차려 먹으면서
하루 종일
일이 힘들었나 봐요
먹자마자
잠이 드는 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