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그때여 자래가 세상에를 나가, 한 곳을 살펴보니
왠갖 짐생들이 모다 모여 있거날
“옳다. 저기는 응당 토끼가 있을 터이니
내 한 번 불러 보리라.” 허고 부른다는 것이
수로 만리를 아래턱으로 밀고 오자니
아래턱이 빳빳하여가지고
토字가 살짝 늘어져 호字가 되었든가 보드라.
“저기 저기 토, 호, 호, 호 생원 계시오?” 허고 불러노니,
첩첩산중 호랑이가 생원 말 듣기는 지 평생 처음이라.
반기 듣고 내려오는디.
엇머리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 귀 찌어지고
몸은 얼쑹덜쑹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동아같은 뒷다리, 전동 같은 앞다리 쇠낫같은 발톱으로
엄동설한 백설 격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를 좌르르르 흩으며
주홍 입 쩍 벌리고
‘홍앵앵’허는 소리 산천이 진동, ‘홍앵앵’ 허는 소리 강산이 뒤눕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래가 깜짝 놀래어 목을 움치고 가만히 엎졌을 제.
아니리
호랭이가 턱 내려와 보니, 아무 것도 없고,
누어 마른 쇠똥 같은 거 밖에는 없것다.
“이것이 날 불렀는가? 거, 묘하게 생겼다.
두루평판에 부쳐놓은 부꺼미 같다마는
고순내가 아니 나니 그도 아니오,
누어 마른 쇠똥 같으면 요참 소낙비에 비 맞은 터가 있을 터인디,
그도 아니오, 아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리보아도 둥굴둥굴, 저리 보아도
둥굴둥굴, 둥굴둥굴 우둥굴아!” 허고 불러도 대답이 없것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더니,
“옳다. 이거 하느님 똥이다! 하느님 똥 먹으면 약된다는디. 어디, 한 입가심하여 볼끄나?” 호랭이가 먹자는 통에 자래가 깜짝 놀래어
저 깊은 속에서 입부리만 겨우 열어가지고,
“여보시오! 당신은 뉘라 허시오?”
호랭이 깜짝 놀래
“이크 이것 봐라, 거 생긴 모양은 도리줌치 속에
배암 잡아 넣어논 것같이 생긴 것이
기중에 인사성은 밝네, 요것이 나허고 통성명을 허자고?
오, 나는 이 산중 지키는 호생원 어른이로다.
너는 명색이 무엇인고?” 자래가 호랭이란 말을 듣더니, 겁짐에 바로 일러버렸것다.
“예! 나는 명색이 자래새끼요!” 호랭이 반기 듣고.
중중모리
“얼씨고나 절씨고, 절씨고나 절씨고.
내 평생 원하기를 왕배탕이 원일러니, 오늘날 만났구나
맛진 진미를 먹어보자 으르르르 어흥!” 허고 달려드니,
자래 듣고 깜짝 놀래어
“아이고 나, 자래 아니오!”
“이놈, 그러면 무엇이냐?”
“내가 두꺼비요!”
“두꺼비 같으면 더욱 좋다. 널 산 채로 불에 살라
술에 타 먹었으면 만병회춘 명약이라니,
내가 그저 너를 먹으리라.”
“아이고, 내가 두꺼비도 아니고, 옳지, 남생이요!” “ 남생이 같으면 더욱 좋다. 습기에는 제일이라허니 너를 산 채로 먹으리라.”
아니리
별주부 듣고 기가 맥혀 혼자말로 허는 말이,
“워따, 이 급살맞어 죽을 놈이 동의보감을 얼마나
달통을 허였간디, 보는 대로 약으로만 먹기로 드니,
이제는 하릴없이 죽었구나.” ‘에라, 내가 기왕
죽을 바에는 그냥 패술이나 한 번 써보고 죽을란다.’
허고, 목을 길게 내놓으며,
“네 이놈 호랑아, 내 목 나간다!”
호랑이 깜짝 놀래,
“이크, 이거 목 나온다. 그만 나오시오. 그만 나오시오.
여보시오, 아 그놈의 모가지가 그렇게 나올랬다가는
하루 수 천 발 나오겄소. 대체 당신 명색이 무엇이오?”
“오, 나는 수국전 옥주부 공신 사대손 별주부
별나리로다.”
무식한 호랭이가 자래 별 字를 알 리가 있으리오.
“별, 별나리? 별나리 같으오?”
“이놈, 호랑이! 내 목 이 모냥 된 내력을 네 한 번 들어 보아라.”
자진모리
“우리 수국 퇴락허여 영덕전 새로 질 제,
일천팔백 칸 기와를 내 손으로 올리다가.
추녀 끝에 뚝 떨어져 뱅뱅 내려오다,
목으로 잘칵 꺼꾸러져 이 모냥이 되었기로
명의 다려 문의한 즉,
호랭이 쓸개를 열 보만 먹으면 목이 직효 헌다기로
우리 수국 도리랑 귀신 잡어타고 호랭이 사냥을 나왔다.
명나라 들어가 곤륜산 호랑이, 수양산 호랑이 잡어먹고
구룡산 영산 화산 아미산 봉래산 돌아들어
겨우 두 마리 먹은 후에.
동해로 건너와서 황해도 들어가 구월산 호랑이,
함경도 들어가 백두산 호랑이,
강원도로 들어가서 금강산 호랑이 잡어먹고,
서울로 들어가 삼각산 호랑이, 전라도로 내려와서
지리산 호랑이 잡어먹고,
해남으로 내려가면 열 마리 채울 게 있다기로
너를 찾아 예 왔노라. 쓸개 한 보 못 주겠느냐?
도리랑 귀신 게 있느냐? 비소검 드는 칼로
이 호랭이 배 갈라라!” 앞으로 바싹 달려들어
도리랑 도리랑 도리랑 허고 달려들어
호랭이 알불을 꽉 물고 뺑뺑돌아드니,
호랭이 꼼짝달싹을 못허고.
그 육중한 놈이 자래에게 매어 달려서 애걸을 허는디.
중모리
“비나이다, 비나이다. 별나리 전의 비나이다.
내가 오대독신이오, 사십이 이미 넘어
오십이 장근토록 슬하 일점 혈육이 없소.
만일 내가 죽게 되면 손세를 막게 되오니
원통한 일이 아니오며,
불효삼천에 무후위대라 허였으니,
선영의 득죄가 망극허오,
차라리 이것 대충으로 내 왼 눈이나 하나 빼 잡수시오!”
“이놈, 안 될 말이로다. 아생연후의 살타라니,
잔말 말고 쓸개만 내놓아라!”
“워따 여기만 놓아주면 당장의 쓸개를 드리리다.”
아니리
쓸개 주겠다고 놓아달라는 것이
반죽음은 된 모냥이라.
꽉 물었든 호랑이 알불을 슬그머니 놓아주니.
휘몰이
호랭이 몽그랐다 후닥딱 뛰어갈 제,
급한 난리 화살 닫듯, 오림에서 조조 닫듯,
조총에서 철환 닫듯,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그저 인홀불견 간 곳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