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신발이 젖어 질퍽대는
길 위에 나는 갈 곳이 없네
사랑니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에 채워 넣을 것이 없네
자정을 알리는 라디오
소리를 함께 들어줄 이가 없네
온기를 나누며 침대에 누워
얘기할 사람이 곁에 없네
마셔선 안 될 걸 마신 것 같아
깊은 잠에 빠지는 것 같아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이
고름처럼 떠밀려 나와
모두 말리던 문을 덜컥 열고
입에 대선 안 될 걸 먹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면서
나는 말했어 괜찮을 거야
늦은 밤 커피숍에 앉아 있어
언제부터 잘 못 됐던 건지
기억하려 해도 기억이 안나
나는 조금 고장 난 것 같아
먹어선 안 될 걸 먹은 것 같아
목이 메어 말도 잘 안 나와
흐르던 시간이 멈춘 것 같아
돌려 놓을 수 없는 과거만
되새김질하고 떠올려보고
후회하고 가슴을 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틈타
나는 잠에 빠져들어가고
비에 신발이 젖어 질퍽대는
길 위에 나는 갈 곳이 없네
사랑니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에 채워 넣을 것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