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방초 - 박귀희
녹음방초 (綠陰芳草) 승화시 (乘花時)에
해는 어이 더디간고
그달 그믐 다 보내고 오월이라 단오일 (端午日)은
천중지가절 (天中之佳節)이오
일지지창외 (日遲遲窓外)하여
창창한 숲 속에 백설 (白舌:지빠귀새)이 잦았구나
때때마다 성현 앞에 산양자치 (山梁雌雉) 나단말가
광풍재월 (光風齋月) 너른 천지
연비어약 (燕飛魚躍) 하는구나
백구 (白鷗)야 날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란다
성상 (聖上)이 버렸음에 너를 좇아 여기 왔다
강상에 터를 닦아 구목위소 (構木爲巢) 하여두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허면 넉넉한가
일촌간장 (一寸肝腸) 맺힌 설움
부모님 생각 뿐이로구나
옥창앵도 (玉窓櫻桃) 붉었으니
원정부지 (怨征夫之) 이별이야
송백수양 (松栢垂楊) 푸른 가지
높다랗게 그네 매고 녹의홍상 (綠衣紅裳)
미인들은 오락 가락 노니는데
우리 벗님 어디 가고 단오 시절인 줄 모르는구나
그달 그믐 다 보내고 유월이라 유두일 (流頭日)에
건곤 (乾坤)은 유의 (有意)하야 양신 (良辰)이 생겼어라
홍로유금 (洪爐流金) 되었으니
나도 미리 피서 (避暑)하여
어데로 가자느냐 갈 곳이 막연쿠나
한 곳을 점점 들어가니 조그만 한 법당 (法堂) 안에
중들이 모여 서서
재 (齋)맞이를 하느라고
어떤 중은 꽝쇠 들고 또 어떤 중은 바라 들고
어떤 중은 목탁을 들고 조그마한 상좌 (上佐) 하나
다래멍덩 큰 북채 양손에 갈라 쥐고
큰 북을 두리둥 둥 꽝쇠는 꽈광꽝 바루는 촤르르르르
목탁 따그락 뚝딱 탁자앞에 늙은 노승 하나
가사착복 (袈裟着服) 으스러지게 매고
꾸벅꾸벅 예불을 하니
연사모종 (煙寺暮鐘)이라고 하는데요
저 절로 찾아가서 재맞이 밥이나 많이 얻어 먹고
우리 고향을 어서 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