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그 곳 쯤에

정태춘



겨울 아침 맑은 햇살이 내 등 뒤에
잠시 머물다 지나가 버리고
잃어 버렸던 시간들이 나를 깨워
불현듯 돌아다보는 창가에
바람이 밤새 두들기던 그 소린 어딜갔나
눈 덮인 저 건너 산 비탈, 햇살도 들지 않는
그 곳에, 그 곳 쯤에 바람 잔단다

겨울 아침 눈부신 햇살이 내 이마 위에
잠시 머물다 지나가 버리고
거칠은 두 손을 모아 쥐고
문득 둘러보는 방 안에
널려진 책들이 밤새 외치던 그 얘긴 어딜 갔나
멈춰진 시계의 바늘 끝에, 풀어진 태엽 속에
그 곳에, 그 곳 쯤에 얘긴 잔단다

아침은 햇살의 축복이요, 나는 늦은 하루를 또 맞네
흩어진 마음을 쓸어 모아 몇 줄의 또 새 노래를 부를까
하지만 지난 밤 쓰다만 그 노랜 어딜 갔나
아침이 오기전 떠나버린 새벽 찬 바람 속에
그 곳에, 그 곳 쯤에 노랜 잔단다

(1982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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