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평 남짓한 방에
월세로 혼자 사는 그는
고달픈 직장 생활 때문에
눈 밑에는 짙은 그늘
사랑도 깊게 못해
숱하게 상처 준 여자들 때문에
b형 남자라는 오명을 씻지 못해
바람이 더 쓸쓸히 느껴지는 가을
클럽에서 친구 소개로 만난 그녀
이름도 가을
그에게 사랑의 의미는
잉꼬의 깃털보다 가벼웠기에
너무나 쉽게
또 짓궂게 그녀와 몸을 섞네
1년이 채 가지 못해
그는 싫증을 느끼고
위태롭게 타오르던
그 사랑의 모닥불은 꺼지고
그는 참 이기적이게도
시기부적절한 태도로
이별통보를 되도록
빨리 하길 원해
그때 마침 그녀의 전화
만나자 놀이터에서
나랑 얘기 좀 해
저기 구석진 자리에서
불쑥 그녀가 꺼내 내미는
임신 테스트기에는
얇지만 선명히그어진 두 개의 선
그 순간부터 그는
손톱을 물어뜯고
다리를 떨어
내가 미쳤지를 속으로 반복하며
담배를 털어 그깟 게 대수냐
애 때면 되지 뭐
근데 평생 때지 못할
죄책감은 어떡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잡지도 버리지도 못해
나는 버러지도 못된다며
술에 쩔어 자책하네
불면증에 매일 선잠을 자네
어느 날밤 그의 꿈에서
낯선 아이가 말을 거네
요즘 꿈만 꾸면 그애를 봐
내 뱃속에서 날
보며 헤엄을 치지
어딘가 나를 좀 닮아서
잠드는게 두려워
오 난 두려워
그녀는 강이 보이는
널찍한 아파트에 살아
고생 따위는 잘 몰라
늘 부족함 없이 자라
잠자리까지 같이한
남자를 만나지만
욕심이 많아
아직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아
그와의 만남은
1년이 다되가지만
전혀 심각하지는 않아
단지 연애까지만
이라고 생각하지 그 이유는
누가 봐도 좀 기우는 그의 형편
그리고 주머니보다
가벼운 그의 성격
함께 맞는 두 번째 가을
불안하게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그날이 한참 지나도
조바심에 해본 자가 진단기엔
진한 줄이 두 개
눈앞이 컴컴해
걱정에 밤을 지세 우네
마음은 계속 급해
혼자는 수습을 못해
알려질까 두려워
친구에게도 말을 못해
무척 짐스러워
뱃속에 자리잡은 존재
눈치 챌 까봐
엄마의 눈도 제대로 마주보질못해
고민 끝에
그에게 말했지
그는 무척 당황해 하며
자신이 없다고 말해
자기 상황을 설명해 가며
담배만 뻑뻑 빨어
결국 죄책감도 둘을 못 말려
이제 그들은 돌아가려고 해
자기가 있던 곳에
수정은 못해
각자 짜두었던 인생의 일정표에
수술 전날 밤 꿈속을 헤맬 때
그녀는 그녀를 꼭 닮은
한 아이와 마주치네
요즘 꿈만 꾸면 그애를 봐
그녀 뱃속에서 날
보며 헤엄을 치지
어딘가 나를 좀 닮아서
잠드는게 두려워
오 난 두려워
요즘 꿈만 꾸면 그애를 봐
내 뱃속에서 날
보며 헤엄을 치지
어딘가 나를 좀 닮아서
잠드는게 두려워
오 난 두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