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에
- 정한모 시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 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微笑)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내 전설(傳說)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 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 말씀이 영원(永遠)히 아름다운
진리(眞理)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病席)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墜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恐怖)의 기억(記憶)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 제2연 “종소리의 동그라미”와 같이 청각을 시각으로 표현하는
공감각적인 표현수법을 쓴 주지적인 서정시로 현대 기계문명에 의한
인간 상실의 비애와 인류의 이상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깊은 신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