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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siona


2조(二祖) 혜가는 눈 속에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도(道) 공부 하기를 청했다는데

나는 무슨 그리 독한 비원도 이미 없고

단지 조금 고적한 아침의 그림자를 원할 뿐

아름다운 것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만나

밤 깊도록 겨울 숲 작은 움막에서

생나뭇가지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저 묵묵히 서로의 술잔을 채우거나 비우며

다음날 아침이면 자기 팔뚝을 잘라 들고 선

정한 눈빛의 나무 하나 찾아서

그가 흘린 피로 따뜻하게 녹아 있는

동그라한 아침의 그림자 속으로 지빠귀 한 마리

종종 걸어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싶을 뿐

작은 새의 부리가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손가락 하나 물고 날아가는 것을

고적하게 바라보고 싶을 뿐

그리하여 어쩌면 나도 꼭 저 나무처럼

파묻힐 듯 어느 흰눈 오시는 날

마다 않고 흰눈을 맞이하여 그득그득 견디어주다가

드디어는 팔뚝 하나를 잘라 들고

다만 고요히 서 있어 보고 싶은 것이다

작은 새의 부리에 손마다 하나쯤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입설단비(立雪斷臂)  ...   김선우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 창비 2003)

1996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선우 시인의 두번째 시집.
첫번째 시집에 이어 시인은 여성적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면서
살아 있는 몸을 신전으로 삼아 뭉클한 생명의 향연을 펼친다.
“우리 시단의 미학적 상한선을 확보한 시집”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뛰어난 시편들이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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