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공을 불러라 화공을 불러라.” 화공 불러들여 토끼 화상을 그린다. 연소왕 황금대 미인 그리던 명화사, 남국 천자 능허대 일월 그리던 화사. 동정유리청홍연 금수추파 거북 연적 오징어로 먹 갈아, 양두화필을 덥벅 풀어 단청 채색을 두루 묻혀, 백릉설화 간지상에 이리저리 그린다. 천하명산 승지간의 경개보던 눈 그리고, 난초 지초 왼갖 향초 꽃 따 먹든 입 그리고, 두견 앵무 지지 울제, 소리듣던 귀 그려, 봉래 방장 운무 중의 내 잘 맡던 코 그리고, 만화방창 화림중 뛰어가든 발 그려, 대한 엄동 설한풍 방풍하던 털 그리고, 신농씨 백초약의 이슬 털던 꼬리 그려, 두 귀는 쫑긋, 두 눈 도리도리, 허리 늘씬, 꽁지 묘똑, 좌편은 청산이요, 우편은 녹수인데. 녹수청산의 에굽은 장송, 휘늘어진 양유 속, 들랑날랑 오락가락 앙그주춤 섰는 모양 아미산월의 반륜퇸들 이여서 더할쏘냐? “아나, 별주부야. 네 가지고 나가거라.”
별주부 화상 받아들고, 목을 쑥 내밀어 뒷덜미에다 딱 넣고 목을 오므려놓으니 물 한 점 젖을쏘냐? 용왕이 어주를 내리며 허시는 말씀, “경이 세상에 나가 토끼 간을 구해와 짐의 병을 쾌할진데 수궁을 반 분한들 무슨 한이 있으리오?” 별주부 이말듣고, “어쨌든 신의 충성 보옵소서.” 용왕께 하직허고 저의 집으로 돌아와 처자와 이별을 허던가보더라.
“여보소, 마누라.”
“에이?”
“나는 용왕 봉명사신으로 토끼를 잡으러 세상에 나가되, 마누라를 잊지 못허고 가네.
이웃집 남생이란 놈이 나와 똑같이 생겼고, 그놈이 우멍하기 짝이 없으니 대관절 가까이 붙들 마소.” 별주부 암자라 거동 보소. 물부리같은 콧궁기로 숨을 쉬고, 녹두같은 두눈을 깜짝거리며 책하여 허는 말이, “나리님 체위중허시고, 연기노중하시거늘 소년경박자의 비루허신 말씀으로 못 잊고 간다 허시니 마음이 도리어 미안이오. 나라를 위하여 세상에 나가시며 조그마한 아녀자를 잊지 못허고 간단 말이 조정에 발론이 되면, 웃음 될 줄 모르시고 노류장화 같이 말씀을 허시니까?”
별주부 대소허며 “충신지가의 충신이요, 열녀지가의 열녀로다. 가족 마음이 이리 든든하니 내 토끼 잡기 무슨 걱정있을리오? 내 만사 제쳐두고 다녀오리다.”
별주부 마누라 문밖에까지 나와, “창망한 진세간에 부디 평안히 다녀오오.”
“그러나 부디 이웃집 남생이를 조심허렸다.”
수정문 밖 썩 나서 경개 무궁 좋다. 고고천변일륜홍 부상에 둥실 높이 떠, 양곡의 잦은 안개 월봉으로 돌고, 예장촌 개 짖고, 회안봉 구름이 떴구나. 노화 날아서 눈 되고, 부평은 물에 둥실, 어룡 잠자고, 자귀새는 훨훨 날아든다. 동정여천파시추 금수추파가 여기라. 앞발로 벽파를 찍어당겨, 뒷발로 창랑을 탕탕. 이리 저리, 저리 요리, 앙금 둥실 높이 떠 사면 바라봐. 지광은 칠백 리, 파광은 천일색. 천외무산의 십이봉은 구름 밖에 가 멀고, 해외소상의 일천 리 눈앞의 경개로다. 오초는 어이허여 동남으로 벌였고, 건곤은 어이하여 일야에 둥실 높이 떠, 낙포로 가는 저 배, 조각달 무관수의 초 회왕의 원혼이요. 모래 속에 가만히 엎져 천봉만학을 바라봐. 만경대 구름 속 학선이 울어 있고, 칠보산 비로봉은 허공에 솟아, 계산파무울차아 산은 층층 높고, 경수무풍야자파 물은 술렁 깊었네, 만산은 울울, 국화는 점점, 낙화는 동동, 장송은 낙락, 늘어진 잡목, 펑퍼진 떡갈잎, 다래몽동, 칡넌출, 머루, 다래, 으름넌출, 능수버들, 벚남기, 오미자, 치자, 감과, 대추, 갖인 과목 얼크러지고 뒤틀어져 구부 칭칭 감겼다. 또 한 경개를 바라봐. 치어다보니 만학천봉이요, 내려 굽어보니 백사지라. 허리굽고 늙은 장송은 광풍을 못 이기어 우줄우줄 춤을 출제. 또 한 경개를 바라봐 원산은 암암, 근산은 중중, 기암 층층, 뫼산이 울어, 천리시내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쭈루루루루루, 저 골 물이 콸콸, 열의 열두 골 물이 한 데로 합수쳐, 천방자 지방자 월턱져 구부져, 방울이 버큼져, 건너 병풍석에다 마주 꽝꽝 마주 쌔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이런 경개가 또 있나? 아마도 네로구나, 이런 경개가 또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