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춘향모 더욱 기가막혀 어사또를 다시 한번 바라보더니 마는 아이고 이게 웬일이여 귀신이 작희를 허는가 조물이 시기를 허는 그나 서방님도 저 지경이 되었으니 내 딸 춘향은 영영 죽네 죽어도 원혼이나 안되게 가셔서 얼굴이나 한번 보여주오 글씨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공연히 왔거든 내 가본들 살려낼 재주 없고 쓸 데 있는 일인가마는 아 그러나 저는 날로 인하여 죽게된 사람인디 여기까지 왔다 안가볼 수 있는가 가세 허며 일어서니 춘향 어무 깜짝 놀래 아이고 가셔도 아직은 못 가셔요 신관사또가 공연한 건강짜로 쌀이나 미음을 넣어줘도 사내 손으로는 못 넣어주게 허고 옥문거리 흰 개꼬리 하나 얼른 못오게 허는디 만일 서방님 인줄 알면 뭇죽엄이 될 것이니 파루나 치거든 가사이다 파루 치기를 기다릴제
진양조 초경 이경 삼사 오경이 되니 파루 시간이 되었구나 파루는 뎅 뎅 치는디 옥루는 잔잔이라 춘향 어머니는 정신없이 앉어 있고 향단이는 파루소리를 들을랴고 대문 밖으 서 있다가 파루 소리 듣고 마나님 파루 쳤나이다 아가씨으게 가사이다 오냐 가자 어서 가자 갈 시간도 늦어가고 먹을 시간도 늦었구나 향단이는 앞을 서고 걸인사우는 뒤를 따러 옥으로 내려갈제 밤 적적 깊어지니 인적은 고요허고 밤새들만 부우부우 옥문거리를 당도허여 옥문 걸쇠 부여잡고 찌긋찌긋 흔들며 사또가 알까 염려되어 크게 부르든 못허고 속으로 자진허여 사정이 사정이 아이고 이 웬수 놈 또 투전허러 갔구나 아가 춘향아 어미가 왔다 춘향아 이렇듯이 춘향을 부르고 자진헐 제 그때여 춘향이는 내일 죽을 일을 생각허니 정신이 막막허여 칼머리 베고 누웠다가 홀연히 잠이들어 비몽사몽간으 남산 백호가 옥 담을 뛰어넘어 들어 춘향 앞에 와 우뚝 주홍 입 쩍 어흥 어르르르르르. 깜짝 놀래 바라보니 백호가 변하여 도련님이 곁에 앉어 춘향아 내가 왔다 옥중 고생이 어떠허냐 춘향아 은은히 부르거늘 도련님 손길을 덥벅 잡고 아이고 도련님 소스라쳐 잠을 깨니 도련님은 간 곳 없고 몸에서 땀만 주르르르르르르 빈 칼머리만 잡었구나 춘향 마음이 산란허고 허망허여 벌렁벌렁 떨고 앉었을 제 부르는 소리가 언뜻언뜻 들리거늘 밖에 누가 왔소 오냐 어미가 왔다 아이고 어머니 이 밤중에 어찌 또 오셨소 오냐 내가 널 다려 헐 말 있어 왔다 이놈의 노릇을 어찌를 헐끄나 이만 쪼끔 나오너라
중모리 춘향이가 나오는디 형문 맞인 다리 더덕이 져서 촌보헐 길이 바이없고 전목칼목으 칼몽우리 서서 목 놀릴 길이 전혀 없네 칼머리를 두 손으로 들어 이만큼 옮겨 놓고 형문 맞인 다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아픈 것을 참느라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다리야 뭉그적 뭉그적 나오면서 아이고 어머니 어찌 또 오셨소 춘향 어무 옥문 틈으로 춘향 형상을 살펴보고 어사또 모양을 보더니 오기가 불꽃같이 일어나 오냐 왔드라오다니 누가 와요 서방님은 오실 리 없고 서울서 편지 왔소 음 오장없는 년 차라리 그 전대로 있고 편지나 왔으면 누가 좋게야 통채 왔드라 아이고 어머니 통채 오다니 날 데려 갈라고 가마가 왔소 너 죽으면 태워 갈 들 것도 안왔더라 아이고 그러면 누가 와요 답답허여 못 살것소 어서 어서 말씀허오 네 평생 앉어도 서방 누워도 서방 잠을 자도 서방 죽어가면서도 서방 방방 허든 너의 서방 이몽룡 씨 비렁 거지 되어 여기 왔다 어서 급히 얼굴 보아라 춘향이 이 말을 듣고 어간이 벙벙 두 눈이 캄캄허여 한참 말을 못 허더니 게우 정신을 수습허여 빈 손만 내 저으며 서방님이 오시다니 서방님이 오셨거든 나의 손에 잡혀 주오 꿈에 잠깐 보던 님을 생시에도 내가 보겄구나 춘향 어무 기가막혀 아이고 쯧쯧쯧쯧쯧 저 빌어도 못 먹을 년 이 잘된 것 왔단 말을 듣더니 마는 단박에 그저 환장을 허네그려 어머니 그게 웬 말씀이오 잘 되어도 나의 낭군 못 되어도 나의 사랑 고관대작 나는 싫고 만종록도 내사 싫소 천정으로 정한 배필 좋고 싫고 웬 말씀이오 나를 찾어 오신 낭군 어찌 그리 괄세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