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저기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내 나이 벌써 이십대 후반
상사에 치여 야근에 치여
다 말라 죽어가는
내 불쌍한 연애세포
심폐소생을 위해
어렵게 주선받은 소개팅
소개팅 날 아침
대왕 뾰루지가 이마에 딱
과도한 메이크업 붕붕 뜬 내 얼굴
오늘따라 머리도 맘에 안들어
유난히 더 들어보이는
푸석한 내 피부
오늘 위해 사 놓은
블라우스만 맘에 들어
일찍 가면 없어 보여
정시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도착 않은
똥매너 소개팅남
5분 가고 10분도 가고
15분까지 지났는데
입구에서 걸어오는
대머리 아저씨
아니겠지 아닐거야
그럴 리 없을거야
흔들리는 눈빛으로 절박한 기도
그 기도를 무시하고
내 앞에 앉은 남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딱 한마디
쏘리 버스를 놓쳐서
아 안 풀려도 너무
안 풀리는 나의 연애사
이렇게 외로이 지나가는 걸까
나의 20대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아니야 난 할 수 있어
아직 얘기 안 끝났거든
사진이랑 너무나 달라
표정을 못 숨기겠어
억지 웃음 지으면서
사진이랑 많이 다르시네요
위 아래로 훑어본 뒤
뜻 모를 그 미소
영혼없는 말투로 돌아온 답
아 작년 사진
헐
일 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대화라도 해 봐야지
주문하려는데
이게 무슨 근본 없는
황당 시츄에이션
자리에서 일어나며
던지는 그 놈 한마디
쏘리 내 스타일이 아니네
왓
짜증나서 화장실 가서
거울 들여다 보는데
섹시 빨간 립스틱이
앞니를 물들였었네
블라우스 위엔
빼꼼 인사하는 가격표
서태지도 아니고
이건 어이상실 캐릭터
말도 안돼 이런 꼴로
소개팅을 한 거야
가격표 떼다가 나가 버린
새로 한 네일
터덜터덜 나오는데
부러진 구두 굽
문고리에 걸려 풀린 블라우스 올
대박
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
되는 일이 없어도
나라면 할 수 있어
나라면 할 수 있어
날 위로해 줄래 응원해 줄래
내게 힘을 줘
할 수 있다고 그렇다고 말이야
이게 다가 아니야
다음에 더 얘기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