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홍순관
앨범 : 나처럼 사는건 나밖에 없지

거미는 그 길고 가느다란
다리를 건방지게 벌리고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한 중앙에
근엄하게 자리잡고 있는가
거미줄은 한 줄 한 줄 낮은 담이되
넘볼 수 없는 높은 벽이요
만만치 않은 울타리요
탄탄한 왕국이요
땅바닥의 잔돌보다 촘촘한 경계
스스로의 위엄을 만들고 있네
그러나 그 끝에 달려 있는
한 방울의 이슬은
얼마나 얼마나 여유로운가
금방 사라질 세상을
거미에게 말해 주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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